|
|
별좌공파홈페이지
|
||
|
|
족보[族譜]와 (생활예절)生活禮節 족보상식 * 족보의간행 *연안이씨족보 족보의 필요성 * 별좌공파의족보 * 항열에 대하여* 항열자의 자순 호칭에 대하여 * 가정과친족* 촌수따지기 첫권째마감 족보[族譜]상식 지금까지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조로 말씀을 올려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보다 전문적[專門的]인 용어[用語]를 사용하여야만 말하는 저도 수월하고 여러분들도 보다 넓은 상식[常識]을 가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점을 고려하여 족보학[族譜學]에 대한 간단한 기초적 상식을 올려 드릴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가문[家門]에 대한것을 아는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여러분이 처가[妻家]에나 외가[外家]에나 또는 자손들의 혼인[婚姻]을 위해 그 뿌리를 상고[詳考]해 보려고 해도 이것을 알아두면 자연히 그 선후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도리[道理]를 하려면 반드시 챙겨두어야할 지식[智識]입니다. 지금부터 족보에 대한 상식을 익힌 다음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려고 합니다. 족보[族譜]라 함은 그 씨족의 계보로서 아버지의 계통,즉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체계적으로 나타낸 도면과 글이 적힌 책을 말합니다. 족보는 그 종족의 역사이며 혈통을 실증하는 기록이므로 후손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초적인 근본을 알게 하는 일은 물론이며 이로서 조상을 숭배하고 종족간의 우애와 화목을 통한 단결심을 고양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족보의 유래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부터 있어 왔으나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이 시작 된 때는 중국의 송나라 때라고 합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이씨조선 중종 11년,서기 1516년대에 이르러 오늘의 모양을 갖춘 족보가 출현하였을 뿐 그 전에는 대개 가승[家乘]이라는 이름의 쪽지나 접는 작은 손 평풍형식의 기록으로 전해오는 것이 고작이였습니다. 족보에는 여러 가지로 뜻을 지닌 해석을 하고 있는데, 우선 넓은 의미의 족보라 함은 대동보,세보,계보,가승 등등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좁은 의미의 족보라 함은, 관향[貫鄕]이 같은 씨족의 세계를 수록한 책으로 보첩[譜帖]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대동보[大同譜]라함은 본관은 각기 다르나 시조가 같은 종족이 모여 함께 편찬한 보첩을 말합니다. 세보[世譜]라함은 두개 종파 이상의 씨족이 함께 편찬한 보첩으로서 일명 세지[世志]라 하기도 합니다. 이상의 것은 대개 한 가문을 이루는 남자의 집이라면 한권 정도를 가추어야 하는데 대개는 큰 형님이 가지고 계시니 나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어느덧 자신의 자식이 자라나면 또 하나의 집이 형성하게 되고 그야말로 바로 큰집이 되면서 그러한 자료가 필요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너무 안이하게 여기다가 그만 큰댁이 잘못 간수하여 잃어 버리기나 한다면 그 가문에는 영원히 뿌리 없는 창피를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수차례의 난리로 인하여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요즘 와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고 나서지만 막연히 어디 가서 무슨 가슴아픈 소리 창피스런 소리를 늘여 놓을 수 있겠습니까.그저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가 그냥 그냥 인생을 넘어가는 불상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별좌공파혈족은 큰 난리를 격지 않고 살아온 덕분에 오늘까지 족보가 잘 전해 오고 있으며 그 동안 몇 차례 족보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기록이 늘 참신하게 정리되었던 것입니다.다만 너무 안이하고 쉽게 생각하는 나머지 앞서 말한 바처럼 큰댁에나 갖출 것이지 기차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며 미루고 미루는 경향이 있어서 이제는 객지에 흩어 살면서 족보한권도 못 가진 분들이 많이 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가족계획이 엄격해서 남자형제가 없이 모두 독신이 되고 있으니 모두가 큰집 행세를 하지 않으면 않될 형편이라 자칫 잘못하면 영영 그 뿌리가 망실되고 말 것입니다. 언젠가는 가슴아픈 사연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고 누가 장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차일 피일 할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만사를 재켜놓고 우선 구해 놓고 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가 되는 것입니다. 족보는 늘 만드는 것도 아니고 보니 기회는 일생에 한번 올가 말가 하는 것이랍니다. 계보[系譜]라 함은 가문의 혈통관계를 이름만 알아보기 쉽게 기재한 도표로서 일부 파만 적은 것이 대부분입니다.현재 연안이씨 태자첨사공파 계통도[延安李氏太子詹事公派系統圖]란 이름의 계보가 나오고 있습니다.이것은 한집안을 이루는 이라면 몇권정도 갖추고 있다가 딸이 시집을 가게 되면 한권씩 혼수물목에 올려 보내는 것이 가문이 있는 집안의 풍습입니다. 비록 시집을 가는 여자라 하더라도 그 뿌리는 알고 있어야 그 자식을 양육하는데 마땅히 인간적인 교훈으로 필요하며 만일 난리가 난다던지 잃어버릴 위험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게 되면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되어 자기 집안의 계통이 만세에 끊어지지 않고 보존 기록된다는 큰 의미가 전해지게 될 것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시집살이 하는데 있어서도 얼굴이 서는 것입니다. 우선 나 하나부터 이를 실행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함께 같은 생각을 같게 되어 그 종족은 오래도록 영원한 체계 있는 집안이 되며 뿌리 있는 집안이라 칭송 받게 됩니다. 가승[家乘]이라 함은 시조로 부터 시작하여 자기의 직계존속과 직계비속만의 이름자와 간단한
기록을 첨가한 것을 말하는데 이 정도는 하나의 집을 이끌고 나가는 개개인의 남자라면
누구나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며 이것을 자손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입니다. 족보는 늘 만드는 것이 아니고 대개 30년을 사람의 1세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30년마다 한번씩 간행을 서둘게 되지만 이를 한번 시작하는 일이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하여 60년을 주기로 하여 편찬해 왔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인쇄술도 발전하였기에 30년을 지키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라 여깁니다. 족보 발간 사업이 종족의 대표 들간의 합의가 이루어 지게 되면 교통이 편리한 일정한 장소에 족보 편찬 사무소를 갖추게 되고 각 문파별로 족보를 정리 편집하는 수단[修單] 유사[有司]를 선정하여 가가호호에 연락하여 그 동안 새로 탄생한 아이의 이름과 출생 년월일,그간에 세상을 떠나신 분의 돌아가신 날짜와 장가간 아들의 친정쪽 가계와 출가한 여자의 남편이름과 가계 등등을 ꆽ아서 일정한 원칙을 정하여 간략하게 편집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관료로서 높은 지위에 근무하게 된 즉 벼슬 이름도 기록에 올림니다.예전에는 모든 벼슬을 망라하였지만 요즘은 가급적 사무관급이나 서기관급이상을 적기도 하고 개개인의 사업으로 성공한 분일경우에는 그 명칭을 기록할 때도 있으며 국가적 표창을 받은 경우에도 이를 기록한다고 합니다. 족보를 발간할 때 경비는 개개인이 갹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각 문파에서 수단금이라는 명목으로 당시 생존자를 기준으로 한 사람당 얼마씩을 고루고루 나누어 정하는데 이때에 책값은 별도로 정하는 것이 여서 언제든지 책값은 별도로 몇 권을 주문해 두는 것이 현명하고 혼동을 피할 수 있답니다. 족보에 이름만 올라가는 것도 다행한 일이지만 이는 족보를 만들 당시에 살아 있는 이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며 여하간 이름만 올리고 책이 없다면 이 또한 명실상부한 삶이라 할 수 없겠지요. 앞으로 이러한 일에는 누구든지 자기의 일이라 여기고 앞장서서 일해야만 그 일족이 모두가 올바른 기록을 후세에 영원히 전할 수 있는 긍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60년또는 ,30년에 한번씩 오는 이 중차대한 기회!그야말로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를 허송하면서 지나가는 이가 그 얼마나 많았는지 불쌍하기도 한 일입니다.앞으로 이러한
불쌍한 인물이 우리 별좌공파안에는 한사람도 있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연안이씨가 맨 처음 족보를 편찬하기는 선조 38년 서기 1605년 우리 태자첨사공파에서 태자첨사공 이후 7세 강호공[康胡公] 귀貴자 령齡자 할아버지의 호구서부상오정오리[戶口西部上午正五里]라는 긴 이름의 당시 임진란후 공신의 후예[後裔]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그해 6월에 태자첨사공 습襲자 홍洪자할아버지를 중세조[中世祖]로 하여 족보를 발간하였는데 그해가 을사[乙巳]년이기 때문에 을사보[乙巳譜]라 이름합니다. 그후 이와 같은 본보기를 따라서 120년쯤 지난 다음에 판소부감공파[判少府監公派]에서 그러니가 영조[英祖]5년 서기1729년에 현賢자 려呂자 할아버지를 중세조로하는 기유보[己酉譜]를 발간하였으며, 또 200년쯤 지난다음 통례문부사공파[通禮門副使公派]에서 순조 7년 서기 1807년에 지漬자 할아버지를 중세조로 하는 정묘보[丁卯譜]를 간행하였으며, 같은해 대장군공파[大將軍公派]에서도 원元자 주柱자 할아버지를 중세조[中世祖]로 한 정묘보를 간행하였답니다.이것이 우리 연안 이씨에서 족보를 갖게 된 사연을 간략하게 적어 올렸습니다만 다음으로는 각 파별로 족보를 만들게 된 년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먼저 머니머니해도 태자첨사공파가 연안이씨가문에서는 그래도 큰소리 칠만한 큰 존재로서 족보하는것도 상당히 진보적인 것을 보면 누구나 우쭐해볼만 하지만 묵묵히 우리 조상님들이 해오신 일을 상고해 보는 것도 현명하겠지요?. 태자첨사공파에서 족보를 간행한것을 연대별로 보면, 1605년 을사년에 을사보를 만들었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지요 1권을 만들었지만 매우 뜻이 깊은 행사였답니다. 다음 1694년에 갑술보 3권,1813년에 계유보 10권,1920년에 경신보 23권,서기1984년에 갑자보 8권이 지금까지의 기록에 속합니다. 다음은 판소부감공파에서, 1729년 기유보 5권을 간행한 이후 1829년 기축보,1983년 계해보 4권을 간행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통례문부사공파에서도, 1807년 정묘보,1872년에 임신보,1912년에 임자보,1956년에 병신보를 간행한바 있고, 대장군공파에서도, 1807년 정묘보를 시작으로,1875년 을해보,1912년 임자보,1939년 기묘보,1988년 무진보를 간행하였다 합니다.이 정도는 비록 다른파의 것이기는 하지만 같은 일가의 것이기 때문에 알아 둘 만한 상식적인 자료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남북이 갈려서 족보조차 지니지 못하고 사는 일가도 많이 있답니다. 최근에 연해주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소련에 가서 살고 있는 동포 가운데 연안이씨라는 사실만 알고 어디파 누구의 자손인지도 모르며 찾아오는 분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설마 성을 바꾸며 살 수는 없는 일이기에 뿌리를 찾지 못해 해 매는 일가친척이 무척 딱하게 보입니다. 이분들의 조상님들이 그나마 족보책이라도 한권 지니고 어디든지 가서 살았다 하더라도 오늘의 참담하고 부끄럽고 돌이킬 수 없는 죄 아닌 죄스러러움을 체험하지는 아니할 것인데 누가 이런 난리가 혹독하게 우리 민족의 정수리에 떨어지리라고 누구 하나 예측이나 하였겠습니까? 매사를 탄탄하게 하기위하여는 언제나 만반의 대비를 평소에 하여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오늘 우리가 이만한 족보를 갖고 있게 된 것도 수백년간 우리의 현명하신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이 아니였으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사실이 아닙니까? 이 말은 백번 천번을 되뉘어도 가치가 샘솟듯 하는 것이오니 비록 잔소리 같지만
자손들에게도 마음 속속드리 스며들도록 잘 가르켜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역사학자 신석호씨는 족보에 대해 그 목적을 잘 말해주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족보는 왜 만드는 것이냐?라고 서두를 끄집어내면서... 족보를 만드는 주요 목적은 종족의 단결을 근본목표로하고 종족의 활동을 보다 활발하게 북돋아 주며 종족 내부의 질서를 지켜 나가는데 큰 몫을 하기 위해 종족의 체계적인 기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자문자답하였습니다. 샸째,단결을 공고히 한다는 의미는, 족인은 동일한 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관계를 지켜 주고 이로서 각자는 깊은 혈연으로 연결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횡적 유대감을 맺어 주어서 보다 더욱 마음을 하나로 묶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종족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의미는, 친족간에 서로 서로 상부상조하는 유대감의 형성과 사회적 성망을 올려서 친족의 명예를 함께 거양하는 일과 반대로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여 친족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며 조상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게 하는 근신하는 도덕성 함양에도 도움이 크며,아울러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 서로서로 용기를 북돋우어나가는 의기투합의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족보를 만드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족보를 통하여 파당이 결성되고 이로 인하여 다른 종족간에 혈투를 자행하는 일도 없지 않았지만 이것은 지나친 아집에서 잘못 생각한 부끄러운 일이요 보다 넓게 생각한다면 친족이 뭉치면 혈족으로서의 단결이 성사되고 나아가 민족이 형성되며 민족의 단결은 곧 국가의 초석이 되고 나라의 힘이 되는것이여서 나라가 어려운 오늘의 경우에는 절실히 필요한 활동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족보 이야기 나온 김에 한가지 알아 두실 것은 본관에 대한 것과 일가 친족의 개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랍니다. 본관[本貫]이라는 것은 앞서 관향[貫鄕]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 쉽게 알게 되는 말인데 시조의 출신지나 또는 지역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연안이씨의 본관은 바로 연안[延安]인데 이는 황해도 땅 연안[延安]을 중심으로 하여 무茂자 시조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자리를 정하시게 되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 사연인즉 앞에서도 말씀하였습니다만 신라의 김춘추가 백제를 토멸하였다는 공로로 연안백[延安伯]으로 봉하였는바 백[伯]은 백작[伯爵]이라는 봉건시대 왕의 계열에 준하는 작위[爵位]로서 아울러 황해도 땅을 모두 시조 할아버지에게 드리면서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을 백성처럼 거느리시는 권한과 여기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품은 모두 우리 시조할아버지의 소유라고 인정하는 그런 높은 위치랍니다. 그렇다고해서 신라의 신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작은 나라의 영주정도의 권세를 누렸다고 할 수 있는바 시조 할아버지가 김춘추 김유신 등과 같은 수준의 공신으로서 대접을 받았다는 기록이나 실증이 남아 있어 당시에는 상당한 위치라는 것만 짐작이 간답니다. 우리 연안이씨의 본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고 다른 씨성의 본관을 두루 살펴보면 이런 특징이 붙어 있습니다. 성씨 가운데 천강성[天降姓]이란 이름의 성은 주로 신라의 박석김씨,고구려의 부여씨 고씨,지륭성[地隆姓]이라고 볼 수 있는 제주도의 고부량삼성,임금이 지어 주었다는 사성[賜姓]이 있는데 이는 경주여섯마을의 여섯가지성 즉 정[鄭]설[薛]리[李]최[崔]손[孫]배[裵]씨등등의 성씨가 있으며,토성[土姓]이라하여 그 지역에 오래 살면 고을 이름을 붙인 성도 있답니다. 청주한씨[淸州韓氏]는 소위 기자의 후손이라는 계통을 갖고 위만에게 쫓껴 배를 타고 지금의 익산으로 왔다가 마한을 세우고 다시 자리를 충청북도 청주로 옮겨 무려 1000년을 살아 왔다고 하여 청주한씨라는 본관을 갖게 되었다 하며 선우[鮮于],기[奇]씨등과도 같은 맥을 잇는다 합니다. 듣기로는 청주한씨가 이제는 모두 환적[還籍]하여 단일본 청주를 쓰지만 오래전에는 130본으로 흩어졌던 일도 있었답니다.김해김씨의 경우에도 토착적인 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김해 땅은 그야말로 김해김씨가 태어난 곳이라는 것이지요.전국에 가장 많은 단일본을 갖고 있는 김해김씨는 모두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142개파로 분파하여 계통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김유신의 자손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음이 특징이랍니다. 그외에 속성[屬姓]이라하여 그 지역에서 살다가 갑오갱장당시에 성이 없던 사람에게도 성을 지어 준 경우의 성시도 있고,항복하여 온 사람에게 성을 지어 준 경우도 있어 이를 투화성[投化姓]이라고 한답니다.그 성의 명예를 위하여 예는 줄입니다. 또 일가[一哥]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같은 본관을 갖기는 했지만 촌수를 따지기도 어렵고 행렬도 알 수 없을 대는 그저 "우리 일가'라는 호칭을 달아 부치기도 합니다만 가급적 그정도로 되면 체면이 서지 않으므로 대개는 촌수와 행렬을 알아서 친족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친척[親戚]또는 친족[親族]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친척은 같은 성시가 아닌 외가[外家]까지 포함하는 경우므로 친족이라야 말이 되는 것이고 이 친족이라는 것은 촌수가 확실하고 행렬이 맞아서 누가 조카이고 누가 아재비인지를 확인한 상태를 말하는데 적어도 이 정도까지는 알고 친해야만 체면이 서는 것이고 우사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으로 무조건 일가라고 말하거든 먼저 어느 파에 속하는지를 먼저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태자첨사공파라고 하거든 또 작은 소파를 물어서 어느 파[派]이냐를 물어야 하는데 태자첨사공파라면 촌수는 따지기 어려워도 행렬은 100%[백푸로] 맞출 수가 있습니다. 만일 일가라고 하면서 저쪽에서 먼저 '어느파이신지요?하고 물어 오거든 이렇게 말하십시요"태자첨사공파에 별좌공파입니다."하면 잘 대답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별좌공파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그때는, "경북예천 호명송곡에 별좌공파입니다."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무식에 대해 약간의 귓띰을 주게 되면 매우 훌륭한 대답이 되고 상대방도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는, --햐아! 제법 많이 알고 있는데 섯불리 말하면 안되겠군!---- 하고 정중하게 대접을 하게 된답니다. 만일에 대답이 신통치 못하면, --허!무슨파인지 사람도 없는가 보구먼 이런 사람이 일가라니--하면서 같은 일가라도 소흘히 대접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대개 일가친척이라도 서로 조금이라도 잘되려고 경쟁을 하게 되는게 인지상정이라고 마음을
다지시기 바라며 연안이씨 중에서 우리 별좌공파에 속하는 이들은 좀더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와서 가문을 더욱 빛내는데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1966년 3월 별좌공파에서도 특별히 파보를 만들었습니다.족보를 서둘러 만들게 된 동기는 태자첨사공파에서 만든 경신보이후 50여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간의 변화를 기록할만한 방법이 없음을 탄식한 세자.녕자[世寧] 할아버지가 앞장을서서 병자.조자[炳朝]할아버지,헌자.녕자[獻寧]할아버지와 재자.녕자[載寧]할아버지가 각각 발의를 하셨는데 세자 녕자할아버지는 서문[序文] 맨 앞에서 병자 식자[炳植]할아버지께서 친히 글씨를 정성것 쓰셔서 마침내 새로운 보물이 다시금 햇볕을 보게되었다고 극구 칭찬을 하셨습니다. 비록 몸은 흩어져 살지만 마음만은 이 한권의 책속에 담아 우리 별좌공파의 단결심을 온 천하에 당당하게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만든 족보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전서공파의 만승[萬承]씨가 고증을 하였다는 역사 기록이 그 동안 모르고 지냈던 무[茂]자 시조 할아버지 이후 세계를 실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는 1959년에 만든 "연안이씨총보'를 근거로 하였던 것입니다만 이러한 기록은 아직 충분한 고증이 없이 함부로 조상의 이름 위에 기록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하여 다른 몇몇 종파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파와의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 할 때는 가급적 마찰이 안되도록 조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이 총보에서는 연안이씨 10개대파를 모두 망라하면서 상당히 넓은 범위의 자료를 수집하여 보완하였는데, 예를 들면 강호공[康胡公.귀貴자.령齡자]할아버지의 호적[戶籍]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강호공의 증조분은 물론이고 증조의 처가까지 무려 스물 일곱분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하여둔것은 가계에 대한 치밀한 면모를 짐작하게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고 청주한씨 족보 가운데 연안이씨를 부인으로 모셨다는 기록과 그 부인의 증조부까지 기록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여하간 현재까지 우리 나라에서 나타난 기록이라면 모두 찾아서 모아둔것이라 여깁니다만 이를 공식적으로 증명을 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다른 파의 주장도 있고 보면 매우 신중한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전 세계의 도서 자료가 공개되고 잃어 버렸던 우리나라의 문적이 속속 들어나서
혹시나 우리 조상의 기록이 불란서루불박물관에서 나온다는 기적도 기대해볼만 합니다.이는
여러분이 장차 자라나면서 하여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옛날 장가를 들면 신랑을 시험한답시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어려운 숙제를 늘여 놀게 되는데 그 중에, "자네 안항이 어떻하신가?"하는 질문입니다. 안항[雁行]이라 함은 기러기 안[雁]자를 지칭하는데 뜻은 "형제분이 몇 사람이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행[行]자는 "항"자로 발음하여 읽는 것이 옳아요.한문[漢文]에는 글자는 같으나 그 의미를 약간 달리함에 따라서도 음을 달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예를 들면 [北]자는 우리가 다아는 북녘[북]자인데 때로는 패북[敗北]이라 읽지 않고 [패배]라고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항렬"이라는 이 말은 기러기들이 행대를 지워 날아가는 모양을 비추어서 한문으로 나타내 본 말인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행자,동반자라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입니다. 항렬은 형제간이면 같은 글자를 사용합니다. 항렬은 문중에서 정하는 것이지만 연안이씨처럼 대성일 경우에는 반드시 대종회에서 문회를 열어 어른들 자문을 받아 정하는데 대개 족보를 편찬할 때 미리 이를 정하여 두고 장차 자손이 생산되면 그 지정한 항렬자를 따르게 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항렬을 정하여 두고 이름을 짓게 되면 멀리 있는 일가친척이라도 순서에 의하여 이름을 정할 수 있으므로 씨족간의 무질서한 작명을 피할 수 있으며 그 항렬자를 보면 즉시 어느 씨족인지를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예의[禮義]를 존중하는 우리의 처지로서는 매우 현명한 방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렬을 따지지 않고 이름을 지었을 경우에는 그가 어느 성씨인지도 헷갈리게 되고 같은 친척끼리 형제 숙질간의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어 뒤죽박죽이 되는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랍니다. 저도 처음에는 항렬자를 무시하고 아들 광한[光漢]이의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와서는 후회가
되는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족보에는 용두[庸斗]라 올려 놓고 있습니다.용[庸]자는 연안이씨
제 28세의 항렬자를 따라서 지은 이름입니다. 항렬자를 정하는 법칙은 성씨마다 정하기 나름입니다. 우리 연안이씨 별좌공파는 별도로 항렬자를 정하지 않고 태자첨사공파의 한 계파이므로 태자첨사공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강호공 귀자.령자[貴齡]할아버지형제분부터 항렬자를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할귀[貴]자를 사용하셨다는 기록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이때부터 모든 성씨가 항렬자쓰기를 본받았다할 수 있습니다. 중세조로부터 10대손 부터 철저하게 지키기 시작했었습니다. 10대=앞자 뿌리근[根],11대=앞자 착할인[仁],12대=외글자 흙토변[土],13대=뒷글자뜰정[庭],또는 심방변[心]외자,14대=앞자 클덕[德],15대=앞자 경사경[慶],16대=뒷자배풀징[徵],17대=앞자말두斗,18대=앞자일만만[萬],19대=앞자갈지[之],20대=뒷자이을연[延],21대=뒷자선비유[儒]등등, 이와같이 같은 글자를 앞글자 또는 뒷글자에 한결같이 이름지어 왔었는데 차츰 한문자의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나 한국인의 이름에 쓰이는 글자는 대개 비슷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연안이씨중 태자첨사공파는 22대부터 천간[天干]열자와 지지[地支]열두자를 차례로 하여 그 변을 따서 항렬자를 미리 약속하고 지었답니다. 22대=앞자기基.23대=뒷자구九,24대=앞자병炳,25대=뒷자녕寧,26대=앞자의義,27대=뒷자희熙로해서 앞자와 뒷자를 번갈아 가면서 정해 나갑니다.계속해서, 28대=앞자용庸,29대=뒷자택澤,30대=앞자성聖,31대=뒷자규揆이고 32대부터는 열두지지[地支]에 의하여 교敎0, 0병秉,연演0,0경卿,진振0,0면冕,남南0,0동東,재載0,유0猷,성成0,0원遠으로 내려갑니다.현재 내가 알기로 태자첨사공파에서 가장 항렬자를 낮게 쓰는 집안은 삼척공파와 현령공파에 있는데 성聖자와 규揆자 까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별좌공파의 경우 택澤자를 쓴 29대는 용국[庸國]의 아릇대 경택[京澤]이가 있습니다. 만일 외가나 처가 쪽에는 원래 항렬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여 처가나 외가에 가서 상하 숙질 조손을 논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어디 사람이 되어서 상하를 너무 몰라서도 않되니 타성에서 항렬자를 정하는 것도 집고 넘어 가려 합니다. [1] 우리처럼 십이간지로 순서를 정하는 예가 있습니다.즉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辛신,임壬,계癸,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등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를 따르는 것인데 녕寧자는 천간의 정丁자를,다음 의義자는 무戊자를 글자 가운데 포함시켜서 항렬자를 정한답니다. 저이름 觀熙의 희熙자인 경우는 기己자를 희자의 옆구리에 달았지만 혼동하지 말 것은 이 글자를 옥편에서 찾을 때 꼭 같은 변으로 쓰지 않고 희熙자는 불화변[火=,...]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10개의 천간만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그러니까 12개의 지지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2]일부는 오행[五行]이라는 주역에서의 순서를 사용합니다.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를 의미하는데 이 글자의 일부를 삽입하여 항렬자를 정하기도 하고 어느 경우는 그 다섯글자가운데 두개내지 세개의 글자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3]그리고 대학[大學]이라는 책에는 "원형리정[元亨利貞]은 [천도天道]지
상[上]이요.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도[人道]지 상[上]이니라"라는 문귀가 있는데 이 글자의
순서를 사용한 예도 있습니다. 항렬은 이미 형제간의 순서를 정하였으니 그 글자의 모양에
따라 숙질 조손의 위계가 잡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숙질조손간의 호칭을 형제처럼 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부를 때는 여러 가지 문중마다 정해 둔 방법이 있습니다. 조카항렬되는 이는 아저씨 즉 숙[叔]항이 되는 분에게 "아저씨"라고 하여야 하는데 지역마다의 사투리에 따라서는 "아재"라는 말을 합니다.우리네 별좌공파사투리는 "아재"라 하니 "아저씨"라고 서울말을 쓰기 거북하면 "아제!"하고 불러도 됩니다. 그러나 어른의 이름 부르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보는 우리네 풍습으로서는 가급적 택호[宅號]를 부르는 것이 상례[常禮]인데 객지 생활을 하다가 보니 택호가 어디 정해진 것이 없지요.그래서 그 살고 있는 동내나 마을 이름을 부르기 도하고 처가 쪽의 동네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곧 택호가 되는 것이니 언제든지 그렇게 택호를 앞에 두고" 00아제요!"하고 부르면 상대방도 좋은 반응이 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조항.즉 할아버지의 항렬일 때는 "할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젊은이를 할배!할배!하고 부르면 빨리 늙으라는 모욕을 주는것 같아서 "아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파에서는 "대부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그러나 무작정 존칭이라 하여 "대부님!"하고 불러 드린다 해도 말의 억양이 잘못되면 오히려 실례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항상 조심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별좌공파에서는 보다 친근감을 주는 뜻으로 "아재!"하고 불러 드리는 것이 가장 부드러운 표현이고 적당한 존칭[尊稱]이라 할 것입니다.다만 가까운 당내간에는 나이가 어리시더라도 반드시 "할배"라 부르시는 게 옳습니다.그 시기는 일단 장가를 드신 이후부터 존칭을 올려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항렬자가 높다고 해서 당내간을 재외하고는 무조건 존칭을 쓰는것은 아닙니다.예절이라는 것은 지나치면 과례[過禮]라하여 탓하고 모자라면 비례[非禮]라하여 공박합니다.절도를 지키지 못하면 예의가 아니라 망발이라고 했어요.그래서 예의를 절도 있게 하라는 의미로 예절[禮節]이라는 표현이 있게 된 것이 랍니다.참으로 어려운것니 서로가 어렵지 않다면 좋은 일이지요. 같은 나이 또래의 숙항이거나 조항이라면 평교라고해서 존칭대신에 "...한가"라하며 또한 나이가 아래인 경우 조항이나 숙항의 친족에게는 "...해라"는 하면 않좋고 "...한가"또는 "하오"라는 표현을 쓰고 반드시 평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낮추는 말 대신에 부드럽게 표현해서 올립니다.상대방은 반드시 조카나 손자뻘이라 해도 존칭을 써서 "하세요"를 하는 것이 좋답니다. 만일에 항렬이 높은 분이 항렬은 낮으나 형님처럼 또는 부형처럼 연세가 높아서 이름을 부르려니 쑥스럽고 그래서 가까히 하기가 거북하다고 느낄 경우가 많을 줄 압니다. 저의 경우처럼 나이는 많은데 항렬은 낮아서 동내에가면 반겨 주기는 반겨 주는데 벙어리처럼 "머뭇머뭇"하시는 아저씨가 많이 계셔서 슬며시 자리를 피하시는 안타까운 일이 많습니다. 만일 우리 별좌공파가 아니고 다른 파에 분들을 만나게될때 그분들이 항렬자가 대부분 우리보다 낮은 경우가 많은데 이를 쑥스럽게 여기고 가까이 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욱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방법이 있으니 조금도 꺼리낌이 없이 말씀하세요. "관희 조카님"이라고 이름을 불러도 좋으며, 나이차이가 10여세 이상이면, "성주어른"하고 택호[처가[妻家]가 성주[星州]임]를 얹어서 부르는것도 부드러운 맛이 있어 좋습니다.아울러 저의 집사람까지 "성주댁"하고 부른다면 거리감이 없어지는게 무척 좋습니다. 흔히 아이 이름을 얹어서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아주 불리한 경우가 나타난답니다.그
아이가 장성해지면 또 무어라고 불러야 할가요?또 문제가 되지요. 가정은 조상으로 부터 나에게로 이어졌고 나로부터 자손에게로 물려지는 것이며 누구나 이것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가정은 나라를 이루는 기초 단위이기도 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근거지이기도 합니다.그러므로 사회의 첫 출발을 하는 출발점인 샘이 지요. 그러나 가정이라는 단위는 씨족으로 부터 나뉘여 시작되고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각기 자신의 가족과 자손이 영원하기를 바라듯 우리의 조상님 역시 우리가 영원한 발전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나의 가정이 희망이듯 우리의 조상은 우리들 모두를 하나의 희망으로 여기면서 지금도 굽어 보시고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가정을 아끼듯 친족을 아끼고 친족과의 사랑을 소흘히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친족이 된것은 불교에서도 무한한 세월동안 쌓고 쌓인 인연이 모여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하는데 다소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곪힌다 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관계를 돈독히 갖는것이 굽어보시는 조상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장차 자신과 자기의 후손에게도 희망을 두텁게 한다고 합니다.그러면 친족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볼가요? 촌수가 가까운 핏줄로서 배우자와 자신을 중심으로한 그림을 보시면서 8촌 이내의 부계[父系]혈족과,4촌 이내의 모계[母系]혈족,남편의 외가의 4촌이내와 아내의 부모를 법적친족[法的親族]이라고 합니다. 한편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를 직계 조상으로 하는 동성의 혈족과 그 배우자를 근친이라고 하며 또한 당내간[堂內間]이라고도 합니다.옛날 같으면 한 마루위에서[堂] 함께 생활하였던 가족 단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당내간은 죽으면 상복을 입어주는 친척이라고도 해서 유복지친[有服至親]이라는 확끈한 별칭도 있습니다. 지친이란 뜻은 매우 가까운 친척[親戚]이란 뜻입니다. 촌수는 복잡한 혈연관계를 구분하는데 필요한 방법이지요.혈통이 이루는 가지의 모양을 따서 그 수를 해아리는 방법이 곧 계촌[計寸]이라는 촌수 따지기인데 그림에서 보듯이 자기와 상대와의 사이에 마디의 수를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부부[夫婦]간에는 촌수가 없고,부모[父母]와는 한마디가 있으니 1촌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마디가 한개일 따름이지 1촌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조부[祖父]와도 두촌이고 형제[兄弟]간에도 두마디 이긴 하지만 촌수를 헤아리는 일은 하지 않는 답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이 너무 섭섭다는 것이지요. 그렇니까 직계간에는 촌수를 따지지 않고 형제도 두마디이긴하나 촌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지만 조부의 아들인 숙부[叔父]는 삼촌이라는 별칭을 씁니다.숙부의 아들은 사촌이라고도 하고 종형제[從兄弟]라고도 합니다. 징조부의 아들은 종숙부[從叔父], 또는 당숙, 또는 5촌이라고 하며,종숙부의 아들인 6촌과 그 아들 7촌은 재종형제 [再從兄弟],그리고 재종질[再從姪]이라 합니다. 다시 8촌과 9촌은 삼종[三從]이라고 해서 고조부모의 아드님되시는 할아버지는 다섯마디이니까 종증조[從曾祖],그 아드님이신 할아버지는 여섯마디이니까 재종조[再從祖],그분의 아드님은 일곱마디니까 재종숙[再從叔]이라하며 그분의 아드님은 삼종형제[三從兄弟]라 하는데 8촌이기 때문입니다.9촌도 삼종질[三從姪]이라고 하고 그 아릇대는 사종손[四從孫]이라고 합니다. 그림을 보시면서 몇번 손고락을 쵵다 오무렸다 하면 자연히 알게 되는게 계촌법이랍니다. 흔히 혈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혈족은 남자조상을 같이하는 집안을 혈족이라하고 흔히 동성동본[同姓同本]을 말하기도 합니다.또 다른 의미의 혈족은 직계 존비속의 여자[어머니와 며느리,손부]도 성은 다르지만 같은 혈족이라고 한답니다. 혈족[血族]은 직계혈족과 방계혈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직계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이렇게 되는 관계를 말하고 방계혈족은 형제자매 숙부 조카 종 재종 등등으로 부르는 관계를 말합니다. 척족[戚族]이라는 말은 친족개념과 거리가 있는데 성[姓]을 달리하는 혈연관계를 말합니다. 외척[外戚]관계는 어머니 할머니의 친가를 말합니다.본인에게는 외가[外家] 진외가[陳外家]이지요. 내척[內戚]관계는 고모 자매 딸 손녀의 배우자와 그 가족과 자손을 말합니다. 인척[姻戚]관계는 아내의 친정을 말하고 여자는 남편의 직계가 아닌 친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절에 대해서 한가지 추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조상에게 절은 단 두번으로 생략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하지 않습니까? 살아계신분에게는 한번의 절을 드리지만 돌아가신 어른에게는 두번의 절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 지낼 때 지방[紙榜]은 화선지라는 얇은 종이에 써 올리는데 왜 이러는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 뿐아니라 제사지내는 시간을 정하여 모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어렴풋 짐작하시겠지요? 한편 제사를 큰댁에서만 지내고 기차 형제간에는 따로 따로 모시지 않는 풍습 역시 예절의 하나인데 왜 그런지 조금씩 이해가 가시겠지요? 이 모든 것이 절도를 숭상하는 우리의 고유한 기본적인 예법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랍니다.모든 것은 절도를 지킨다는 것이지요.이것은 지혜롭게 살아오신 조상님들의 엄격한 원칙의 하나입니다. 비록 마음으로는 억제할 수없는 비장함이 있고 슬픔이 있고 한없이 드리고 싶은 조상에 대한 향심[向心]을 무한정 통제하지 않고그냥 방치하게 한다면 자손으로서는 앞으로 살아가는 생업[生業]에 많은 지장을 주게 되고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피해[被害]를 끼치게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그래서 물질로만 무조건 정성의 척도로 밀어 부치지 말고 이를 절도있게 한다면 그야말로 진심에서 울어 난 마음이 되고 두고두고 영원하게 조상의 고마움을 기리게 되겠지요. 재산이 없거나 피란을 하는도중에 조상에게 예를 가추지 못할때가 있다하더라도 무엇보다 정성을 앞세운다면 그것을 더욱 값지게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요즘에는 제사도 대신 지내게 한다든지 부보가 돌아가신뒤 울음도 대신 울게 하는 풍습이 있는 모양인데 이는 정성과는 거리가 먼 예절이라고 볼 수 있고 예절을 한낫 체면치례로 여기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친족이라고 해서 반갑다고 길가에서 서로 부등켜 안고 오래도록 서 있으면 많은
오가는 이들이 흥미스럽게는 볼른지 모르나 통행에 불편할 것이고 당사자들끼리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쌓였던 감정이 줄어들게 되어 마침내 쑥스럽게 해여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적당하게 인사를 나누고 아쉬운가은데 해 여지면 다음에라도 더 보고싶은 마음이
남게 되겠지요. 제가 어느때 지리산[智異山]에 갔었는데 마침 그날 머무는 집에 제사가 들어 초저녁부터 제사 준비에 부산하더니 새벽까지 제사를 지내는데 저로서는 너무도 가관[可觀]이라 잊지를 못합니다. 음식은 그 지역에서 나는 것과 해외[海外]에서 수입한 것까지 모두 망라했고 신주나 지방도 보이지 않는데 온동내 사람이 다 모여서 엄숙한 척하면서 줄을 서 있다가 한꺼번에 절을 하기 시작하는데 한번,두번.세번,열번..그리고 사람마다 술잔을 올리는데 수십번씩 올리고..쉴 사이 없이 절을 또 하고 촛불이 다하면 다시 새것으로 켜 놓고 또 절을 하는 것입니다.남의 집 제사에 비록 구경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매우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사람이 사는 곳에 온 것이 아니라 무슨 산짐승들 사는 곳에 왔는가 싶어 무섭기도 하여 어리둥절한 적이 있어 지금도 그 생각만하면 괴이한 생각이 난답니다. 이들은 무조건 많이 하면 좋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여서 그런가 보고 예절에 대한 강의[講義]를 한바탕해 주었더니 나이든 분들은 고개를 갸웃등하지만 젊은이들은 제법 빨리 알아 차리더군요.제 말에 일리[一理]즉 "완 투"가 있었던 거지요 언제나 인간은 이 정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며 항상 필요에 의하여 정해 자는 것이니 마음으로의 정성과 분수에 적합한 기준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곧 기준이 될것입니다. 법도[法度]는 지방[地方]과 시기[時期]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도 모두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며 비록 좁은 땅에서 한결같지 못함을 탓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또한 지나침을 잊은 까닭이니 이 모두가 옛 선인들의 경험을 통한 가르침 속에 살아 있는 지혜[智慧]요 문화[文化]라 할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화[文化]라함은 공통성을 지키기 위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오로지 최대공약수를 찾기 위한 노력의 결정체[結晶體]라 는 것이지요. 뿐 아니라 문화는 늘 그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항상 창조적인 사고가 전제된답니다.우리 연안이씨 집안이 훌륭하신 조상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한결같은 자세로 자신을 잘 다스려서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아가 문호[門戶]를 화려하게 빛내고 보면 이것이 또한 삶의 보람이며 자신의 영달이요 자손만대를 위한 초석이 되는 것이랍니다.나아가 씨족의 문화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며 다른 씨족으로 하여금 본보기가 되며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위치에 있는 여러분의 활동에 앞으로 크게 기대를 모아 보렵니다. 늘 마음의 길을 가장 중요하게 살피면서 지혜롭게 사리를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자리에 머물지 말고 항상 앞으로 앞으로 나아 가는 자세로 늘 세롭게 세롭게 생각을 모아 실천에 서슴치 말아야 할 것이며,[日新日新復日新]. 흐르는 물에 잠긴 달빛처럼 늘 겸손하여 항상 사람들이 존경을 받아 가면서 자신의 기개 또한 지 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潛流月光姿態然]. 호랑이[虎]가 우는[鳴] 소나무[松] 무성한 골짜기[谷][虎鳴面松谷洞=호명면 송곡동]! 여기가 당신의 뿌리라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여 열심히 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첫번째 내보내는 이 책은 비록 조촐한 모습이나 이제는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정답게 살던 우리 일족이 세계 방방곡곡 이름모를 곳으로 흩어져 살게 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게 될것에 미리 생각하는 기희를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살기에 바빠서 마음이 내키지 못하는 사이 마침내 이 육신을 떠나는 날 한숨소리 한자락만 남기게 될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그러므로 기희 있는데로 잘 수용하고 이를 예비하여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훗날 후회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알게될 것입니다. 생업에 몰두하다 보니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지내던 수십여년! 생각만 앞서고 행동이 모자라던 그 큰 공백을 매우는데 비록 한조각에 지나지 못하는 기록이지만 조상을 상고하고 자손에게 내력을 전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 서울 사는 우리 연안이씨 별좌공파 연송회[延松會] 회원들이 각기 마음을 모아 자그마하게 이루어 졌음을 가상히 보시고 더욱 격려하여 주시면서 너그러히 가납하시기 바랍니다. 종친[宗親] 여러분! 항상 건강하십시요. 延 松 會 會長 觀 熙 올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