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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李氏)에 대하여 우리나라 두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대성(大姓)으로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막강한 세력을 떨치며 명문의 지위를 굳혀온 거족(巨族)으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홀륭한 인물을 숱하게 배출하였다. 이씨의 연원을 계통별로 분류하면 연안이싸로서 시조는 이무[李茂].당[唐]의 종실이다. 고조(李淵)의 자 서강왕 이원례(李元禮)의 장자 회남왕 (李茂)으로 백제정벌에 중랑장으로 신라 무열왕7년 우리나라에 와 백제를 평정하였으나소정방의 무법한 행동을 자제토록 하여 당이 다시 신라를 합병하려는 음모를 사전에 방지하는 공을 이루게 하는등 양국간의 평화를 추구해온 공로로 무열왕은 그에게 개국 현후작에 식읍 1천호를 추봉하고 빈객으로 예우를 하였으며 연안후(延安候)로 황해일원을 봉토로 봉했다. 연안(延安)의 의미 역시 시.서경과 사기에 나오는 문귀를 인용 삼국통일후 미리 살육을 방지하고 안정을 도모하였다는 연년평안(延年平安)을 이룬 공로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신라 육촌(六村)중
알천양산촌장(閼川楊山村長)인 알평(閼平:표암공)이 시조인 경주이씨
계통이 있고, 전주이씨의 시조인 한(翰)의 계통과 중국
한문제(漢文帝)때 사람인 고성이씨의 시조가 된 반(槃)의 24代孫 황(璜)과
김수로왕의 둘째 아들 후예로 전하는 인천이씨의 시조인 허겸(許謙),
원(元)나라 출신으로 조선개국에 공을 세워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진
청해이씨인 시조 이지란(李之蘭), 중국 농서 출신인 낙랑태수(樂浪太守)를
지낸 안악이씨의 시조 진(震)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이씨는 신라와 고려조에서 역사를 수놓은 명신(名臣), 재상(宰相), 학자와 효자, 열녀(烈女)등이 가문을 빛냈으며, 조선조 519년 동안 왕조를 지켜온 가문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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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이(李)씨
연안(延安)의 의미 역시 시.서경과 사기에 나오는 문귀를 인용 삼국통일후 미리 살육을 방지하고 안정을 도모하였다는 연년평안(延年平安)을 이룬 공로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지금 황해도 연안(延安)에 식읍을
정하여 터를 잡 아 후손들의 번연의 기틀을 삼게 되었다.그러나 중랑장공
이후 중간 6백 40년 중 여러대의 세계가 이어 오다가,강호공
이귀령[貴齡]의 역사기록을 바탕으로하여 선조때 파보를 간행하였는데
이를 을사보[乙巳譜]라한다,을사보는 연안이씨의 근량[根樑]이되는
태자첨사공파가 주축이 되어 처음으로 만들어진 족보이다. 이를 근거로하여
부사공, 판서공,대장군등등 연계4파가 뚜렷하 게 확립되었다.
해고(海皐) 이광정(李光庭)은 임진.병자난의 공신이며 청사에 빛나는 대표적 청백리이다. 그밖에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을 주고한 이귀는 결단력있는 지도자로 욕심이 없이 관작을 멀리하였다. 특히 태자첨사공파에는 이씨조선 500년동안에 가장 많은 청백리를 배출한 명문이다. 대체로 연안이씨를 삼한갑족이라 하는것은 벼슬을
다소 타 씨족보다 많이했다는 점도 있겠지만 조선시대에 많은 씨족들
간에 원한관계가 없고 오로지 선비정신으로 일관한 자세가 더욱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인정된다.
가문을 빛낸분들
시조시인으로 이름이 있는 가람 이병기도 연안이씨의 인 물이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업적은 우리 시조를 현대적인 참신하고 사실적인 시풍으로 일신하여 부흥시킨데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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